공항·거리 메운 APEC 물결…시진핑, 선전서 미·중 외교 승부수

중국 광둥성 선전 바오안국제공항에 들어서자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개최를 알리는 홍보물이 곳곳에서 눈에 들어왔다. 시내로 향하는 도로변 가로등마다 APEC 깃발과 배너가 줄지어 걸려 있었다.
버스정류장 광고판에도 APEC 홍보 영상이 흘러나왔다. 선전 주요 호텔 1층 로비에서도 APEC 로고를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도시 전체가 손님맞이에 나선 모습이었다.

지난달 30일 찾은 선전공항 출국장 보안검색대 진입 구역에는 APEC 대표단 전용 통로 안내판이 설치돼 있었다. 아직 출입은 통제된 상태였다. 공항 조형물 앞에서는 중국인 여행객들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도시 미관 정비도 한창이었다. 시내 교차로의 웰컴 투 선전 조형물 앞에서는 인부 5명가량이 화단을 손질하고 있었다. 택시 기사는 승객이 타자마자 안전벨트를 매라고 재촉했다. 현지 기업 관계자는 "평소보다 안전 규정을 신경 쓰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12년 만에 중국서 열리는 APEC 선전이 국제 외교무대로 변신하고 있다. 오는 18~19일 열리는 제33차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도시 정비부터 교통·보안 대책까지 준비가 속도를 내고 있다. 선전은 올해 외국어 표지 10만여곳을 바로잡고 버스·지하철·택시와 공공시설 등에 스마트 번역기 7000여대를 배치했다.
공항과 선전만 등에는 결제·교통·관광 정보를 제공하는 외국인 원스톱 서비스센터를 마련했다. 중국이 APEC을 개최하는 것은 2014년 베이징 회의 이후 12년 만이다.
선전시 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는 지난 9월 말 시정부가 공공안전과 도시관리, 교통 분야에서 임시 행정조치를 시행할 수 있도록 승인했다. 이 조치는 이달 30일까지 유효하다. 회의장 시설도 지난 8월 말 준비를 마쳤다.
중국은 이번 회의의 주제를 아시아태평양 공동체 구축과 공동 번영 촉진으로 정했다. 개방과 혁신, 협력이 3대 우선 과제다. 정상회의에 앞서 14~16일 APEC 기업인자문위원회(ABAC) 회의가 열리고 17~18일에는 약 1000명의 정·재계 인사가 참여하는 APEC 기업인 정상회의가 개최된다. 인공지능(AI)과 디지털경제, 아태자유무역지대(FTAAP) 등이 핵심 의제다.
도시 정비 넘어 '중국의 개방' 전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이번 APEC은 중국의 경제·외교적 영향력을 보여줄 무대다. 개최지를 선전으로 정한 것도 의미가 있다. 개혁개방의 상징이자 중국 첨단기술 산업의 중심지에서 외국 정상과 기업인들에게 중국의 혁신 역량과 시장을 부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대 외교 현안은 미국과 관계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 주석은 지난 9월 워싱턴에서 정상회담을 열고 양국 관계 안정 방안을 논의했다. 정상회담을 앞두고 양국은 당초 오는 10일 종료 예정이던 무역 휴전을 내년 1월 10일까지 2개월 연장하는 데 합의했다.

하지만 관세와 반도체 수출통제, 희토류 공급망 등 핵심 쟁점은 여전히 남아 있다. 두 정상은 이달 중국에서 다시 만날 계획이다. 하지만 관세와 반도체 수출통제, 희토류 공급망을 둘러싼 갈등은 해소되지 않았다. 미국은 핵심 광물의 중국 의존도를 낮추려 하고 중국은 희토류 공급망에서 강한 협상력을 유지하고 있다.
북한 문제도 외교 변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달 24일 중국 단둥을 찾아 왕후닝 중국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과 만났다. 앞서 지난 6월 시 주석의 방북에 이어 북·중 고위급 교류와 경제협력이 확대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 대화 재개에 관심을 보여왔지만 북한의 호응이 없어 APEC을 계기로 한 북·미 정상회담 가능성은 낮아지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시 주석은 이번 APEC에서 미국과 무역 갈등을 관리하는 동시에 아태지역 경제협력을 주도하는 국가로서 중국의 입지를 강화하려 할 전망이다.
중국 외교가 한 관계자는 "미국의 통상 압박 속에서 개방과 다자협력을 강조하는 중국의 메시지가 얼마나 많은 회원국의 지지를 얻을지에 각국이 주목하고 있다"며 "올해 APEC에는 어느 때보다 무역과 기술, 안보를 둘러싼 중국의 복잡한 외교 과제가 맞물려 있다"고 말했다.
선전=한명현 기자 wise@hankyung.com
베이징=김은정 특파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