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밍플러스 화면을 불러오고 있어요

한국시리즈 매진은 순식간, 암표는 200만 원 [현민석의 페어플레이]

매크로 새치기에 빼앗긴 팬들의 '정가 구매 기회' 판매 중 가격 바뀐다면 예매 대기 전 고지해야 재판매 가격 상한으로 웃돈 노린 사재기 줄여야

한경 로앤비즈의 'Law Street' 칼럼은 기업과 개인에게 실용적인 법률 지식을 제공합니다. 전문 변호사들이 조세, 상속, 노동, 공정거래, M&A, 금융 등 다양한 분야의 법률 이슈를 다루며, 주요 판결 분석도 제공합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가을야구 예매가 열리는 날. 직장인 B씨는 긴장된 마음에 컴퓨터 앞에 앉는다. 예매개시 시각은 오후 2시. 현재 시각은 1시 50분. 로그인을 마친 B씨는 머릿속으로 클릭 순서를 그려 본다. 날짜, 3루 쪽 구역, 빈 좌석, 그리고 망설임 없이 결제. 마우스를 쥔 손에 땀이 배기 시작한다. 현재 시각은 1시 59분 50초. B씨는 새로고침을 누른다. 2시가 되자 화면이 잠시 하얗게 멈췄다가 숫자 하나를 띄운다. 대기 순번 20만 번.

5분이 지나도 대기 순번은 아직 10만 번대인데 좌석 배치도는 빠르게 회색으로 바뀐다. B씨가 바라던 3루 쪽 좌석도 회색이 된다. 결국 매진. 그날 저녁 B씨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중고 거래 앱을 연다. 같은 경기 같은 구역의 좌석이 정가의 몇 배를 붙인 채 줄줄이 올라와 있다. B씨가 새로고침을 누르던 그 시각에 누군가는 이미 그 좌석들을 사 두었다.

한국시리즈에서는 정가 12만 원짜리 좌석이 200만 원에 올라온 경우도 있었다. 공연장도 다르지 않다. 지난 8월에는 한 암표상이 구속되었다. 그는 매크로로 공연 티켓을 쓸어 담아 정가 21만 원짜리 표를 273만 원에 되팔았고, 그렇게 1년 동안 챙긴 이익이 무려 4억 2000만 원에 이른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구단도 공연 기획사도 표가 순식간에 동난다는 것을 안다. 몇 배를 주고서라도 사겠다는 사람이 줄을 선다는 것도 잘 안다. 그런데도 왜 표를 그렇게 싸게 파는 것일까. 답은 주최사가 미리 정해 공표하는 값, 즉 정가(定價)가 단순한 가격표가 아니라는 데 있다.정가는 왜 시장가보다 싼가 시장에서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따라 정해져, 사려는 사람이 많으면 값이 오른다. 그런데 티켓 시장에서는 이 원리가 그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구단과 공연 기획사 같은 주최사는 수십만 명이 몰릴 것을 알면서도 가격을 올리지 않고, 부족한 좌석을 선착순으로 배분한다.

이유는 팬층에 있다. 돈을 가장 많이 낼 사람이 아니라 가장 간절한 팬에게 좌석을 주어야 그 팬이 다음 시즌권과 다음 앨범을 사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가는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곳에서 정해지는 시장가보다 싸다. 참고로 국회도서관 『데이터와 법』 제44호에 의하면, 암표의 재판매 가격은 공연이 정가의 약 1.81배, 프로스포츠는 약 2.56배로 추정되는 실정이다. 이처럼 정가 12만 원과 암표 200만 원 사이의 188만 원은 주최사가 받을 수 있었지만, 팬에게 남겨 둔 몫이다. 정가는 가격인 동시에, 좌석을 가격이 아니라 선착순으로 배분하겠다는 주최사의 약속이다.

암표의 해악은 비싼 값이 아니라 바로 이 약속을 깨뜨리는 데 있다. 암표상은 매크로로 선착순의 줄을 새치기하고, 간절한 팬에게 돌아갔어야 할 좌석을 비싼 값에 다시 판다. 주최사가 팬에게 남겨 둔 188만 원이 그렇게 암표상에게 돌아간다. 그래서 피해자는 273만 원을 낸 사람이 아니라 B씨처럼 정가로는 표를 살 수 없게 된 사람이 되고, 그 피해는 돈으로 환산하기도 어려워 아무도 배상을 청구하지 않는다

.법이 벌하는 것은 값이 아니라 새치기다

지난달 14일 2026 프로야구 포스트시즌 와일드카드 결정전 두산 베어스와 LG 트윈스의 경기가 열리는 잠실야구장 주변에서 경찰들이 밀집지역 관리와 암표 단속 등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뉴스1
지난달 14일 2026 프로야구 포스트시즌 와일드카드 결정전 두산 베어스와 LG 트윈스의 경기가 열리는 잠실야구장 주변에서 경찰들이 밀집지역 관리와 암표 단속 등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뉴스1

경범죄처벌법은 경기장 앞의 현장 암표를, 공연법과 국민체육진흥법은 매크로로 산 표를 웃돈에 되파는 경우를 처벌할 뿐이다. 하나는 현장의 질서를, 하나는 예매를 교란하는 부정한 수단을 처벌 대상으로 삼은 것이어서, 웃돈을 받고 되파는 행위 자체는 어느 법도 처벌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지난 2월 개정되어 8월 28일 시행된 공연법과 국민체육진흥법은 같은 원리 위에서 처벌의 범위만 넓혔다. 매크로를 썼든 안 썼든 재판매 목적으로 구매 절차를 우회하면 부정 구매, 상습적으로 또는 영업으로 구입가보다 비싸게 되팔면 부정 판매로 보아 판매금액의 최대 50배까지 과징금을 물린다. 과징금이 겨누는 것은 여전히 값이 아니라 새치기와 영업이다. 올가을 야구는 이 법에 따라 치러지는 첫 포스트시즌이다.

그런데 이 법도 닿지 않는 곳이 하나 남는다. 규칙을 깨는 쪽이 암표상이 아니라 표를 파는 쪽일 때다.오아시스의 대기열이 가르쳐 준 것2024년 영국 오아시스 재결합 공연에서는 148파운드이던 입석 값이 예매 도중 두 배 넘게 올라 팬들의 분노를 샀다. 수요에 따라 값이 오르내리는 탄력 가격제(dynamic pricing)가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그러나 이 사건을 1년 조사한 영국 경쟁시장청의 결론은 달랐다. 값을 올린 것은 탄력 가격제가 아니었다. 예매처는 싼 입석을 먼저 팔고 다 팔린 후에 비싼 입석을 꺼냈고, 같은 구역 좌석에 '플래티넘'이라는 이름을 붙여 2.5배에 팔았을 뿐이다. 팬들은 B씨처럼 새로고침을 누르며 148파운드라는 정가를 믿고 줄을 섰는데, 진짜 판매 규칙은 결제 화면에 들어선 뒤에야 알 수 있었다.

표를 파는 쪽이 좌석을 선착순 대신 가격을 기준으로 팔기로 하는 것 자체는 금지할 일이 아니다. 항공사들도 좌석 요금을 수요에 따라 올리고 내린다. 영국 경쟁시장청도 값이 변하는 판매 방식, 즉 탄력 가격제 자체를 위법하다고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방식을 팬에게 알리지 않는다면, 웃돈을 암표상이 가져가느냐 파는 쪽이 가져가느냐가 다를 뿐, 정가를 믿고 줄을 선 팬이 정가로는 살 수 없게 된 처지는 동일하다. 그러므로 어떤 방식으로 팔든 줄을 세우기 전에 그 방식을 알려야 한다. 알리지 않고 결제 화면에서 값을 올리는 것은, 선착순의 약속을 깬다는 점에서 암표상의 새치기와 다를 바 없다.규칙을 지키게 하는 법, 고지 의무와 재판매 상한우리 공연법에는 판매 도중 값을 바꿀 때 팬에게 무엇을 언제 알려야 하는지 정한 조문이 없다. 영국 정부는 지난해 11월 가격이 바뀌는 판매는 24시간 전에 알리도록 하는 입법 계획을 발표했다. 우리 전자상거래법도 지난해 2월부터 처음 화면에는 일부 가격만 보여 주고 결제 단계에서 값을 덧붙이는 순차 공개 가격책정을 다크패턴으로 금지하고 있다. 팬들을 줄 세워 둔 채 비싼 표를 꺼내 가격을 올리는 방식도 이 규정으로 다룰 수 있도록 기준을 넓힐 필요가 있다.

재판매 가격의 상한도 논의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 법에는 재판매 가격을 제한하는 규정이 없지만, 영국 정부는 같은 계획에서 재판매 가격을 정가 이하로 묶고 플랫폼 수수료에 상한을 두기로 했다. 50배 과징금은 상습과 영업을 벌할 뿐이어서, 웃돈을 노리고 표를 쓸어 담을 유인은 그대로 남는다. 만일 재판매 가격이 정가에서 일정 수준 이상으로 높아질 수 없다면 매크로를 돌릴 이유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물론 가격 통제는 시장경제에서 예외적인 수단이다. 그러나 정가에 수수료를 더한 금액을 상한으로 두는 것은 국가가 값을 정하는 가격 통제가 아니라 주최사가 스스로 공표한 값을 지키게 하는 것이다. 백 년 전 재판매 상한을 위헌이라 했던 미국 법원도 1964년에는 합헌으로 받아들였다.

암표가 훔치는 것은 돈이 아니라 정가에 표를 살 차례다. 그 차례를 지키겠다는 약속이 정가이고, 암표상을 통한 새치기는 그 약속을 깨는 것이다. 웃돈을 주고 암표를 산 사람도 남의 차례를 산 것이니, 그 새치기에 동참한 셈이다. 정가라는 약속이 지켜지는 날, B씨가 다시 누르는 새로고침은 비로소 공정한 경쟁이 된다.

관련 투표와 댓글을 불러오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