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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대 연봉 ‘서초 법무사’ 됐다, 평생 기계만 만진 48세男 비법

“평생 기름때 묻은 기계를 만지며 살았던 내가 법무사가 됐다.”

난 법의 ‘ㅂ’자도 몰랐다. 목포해양대에서 기관공학을 전공했고, 21년 차 공군 소속 기술직 군무원(군부대에서 군인과 함께 근무하는 특정직 공무원)으로 법과 전혀 관련 없는 사람이었다. 대학 때 교양 수업이라도 법학 강의 한번 들어본 적 없고, 도서관에서 법전을 펼쳐본 일이 없었다.

장경천 법무사. 강정현 기자
장경천 법무사. 강정현 기자

" 마흔을 앞둔 어느 날, ‘이 나이에 다시 공부해서 정년 없는 평생 직업을 가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

그래서 소위 ‘대한민국 8대 전문직’ 중 하나인 법무사 시험에 뛰어들었다. 법 공부라고는 해본 적이 없는 비(非)법대생에다가, 비(非)법계열 직종에서 일까지 병행해야 하는 내가 말이다.

이른바 ‘노베이스(no base)’ 늦깎이 수험생에게 법 공부는 그야말로 고난의 연속이었다. 처음에는 한자가 빼곡한 1000쪽이 넘는 기본 개념서 한 번 읽기도 벅찼다. 직장 일로 녹초가 된 몸으로는 학원 강사가 시키는 공부량의 반의 반도 못 따라갔다.

그랬던 장경천(53·27회 법무사시험 합격)은 지금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 이름을 건 사무소를 운영하는 개업 법무사가 됐다. 사무실 직원도 5명이나 뒀다. 정확한 매출을 밝히긴 어렵지만, 개업 5년 만에 내 수중에 떨어지는 돈만 억대 연봉이다. 적지 않은 나이에 시작한 전문직 도전이었지만, 앞으로 30년은 더 먹고 살 수 있기에 1000% 만족한다.

나와 맞지 않는 회사 생활을 꾸역꾸역하고 있는가? 조직의 부품처럼 살다가 인생의 끝을 맺을 것 같은가? 노후 대비 없이 무턱대고 정년까지 버티고 있지는 않은가?

내 얘기를 통해 당신도 길을 찾을 수 있을 지 모른다. 그 길 끝이 굳이 법무사가 아니어도 나 같은 마인드라면 무엇이든 새로운 일을 찾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나의 원래 직업은 ‘군무원’이었다. 많은 이들이 ‘신의 직장’이라 불렀다. 9급으로 들어가 6급으로 승진하기까지. 밖에서 봤을 땐 별 탈 없어 보였을 거다. 매달 700만원(세전)씩 또박또박 찍히던 월급, 큰 과오만 없으면 정년까지 보장된 삶이었으니 말이다.

안정적인 직장이었지만 갈증과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다. 군인 수가 줄면서 군무원도 훈련·당직에 투입됐고, 강압적인 조직 문화와 승진을 둘러싼 사내 정치에 출근이 싫은 날도 많았다.

퇴직을 결심한 결정적 계기는 두 딸의 교육이었다. 진주를 떠나 수도권에서 공부할 기회를 주고 싶었지만, 발령 명단에서 번번이 빠졌다.

“수도권 발령을 기다리다 지쳐갔어요. 전문 자격증을 따면 전국 어디서든 정년 없이 일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죠.”

늦은 나이에도 공부해서 뛰어들 수 있는 이른바 ‘8대 전문직’, 변호사·변리사·회계사·세무사·감정평가사·법무사·노무사·관세사를 하나씩 놓고 따져봤다. 나이·전공·시험 난도·시험 적합성·미래 성장성 등 현실적인 조건들을 고려하고 나니 결국 법무사로 좁혀졌다.

어떤 전문직은 취업해서 실무 교육을 일정 기간 더 받고 나서야 개업이 가능하더라고요. 저는 늦게 시작했으니 시간이 얼마 없잖아요. 가장으로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제 이름으로 된 사무실을 바로 개업해서 돈을 벌 수 있는 게 중요했습니다.

2012년, 서른아홉의 나이에 처음 법무사 시험판에 뛰어들었다. 그땐 그저 ‘남들도 다 하는데 나라고 못 하겠나’라는 가벼운 마음이었다. 하지만 직장을 다니며 전문직 시험을 준비한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고된 일이었다. 하지만 퇴근 후엔 지독하게 공부를 팠다.

만 8년간의 천신만고 끝에 마침내 2021년 법무사 시험에도 합격했다. 2017년 행정사, 2019년 공인중개사에 이어 ‘사짜 3관왕’이 된 거다. 그 세월을 돌이켜 보니, 법무사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있었다.

(계속)

“이걸 몰라서, 멋모르고 공부만 하다 시간을 버렸다.”

8년을 버텨 합격한 그가 경고했다. 늦깎이 수험생에게 필요한 건 무작정 책을 파는 끈기만이 아니었다. 공부한 시간을 합격으로 바꿀 전략은 따로 있었다.

“비법대 출신에 직장까지 다닌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이곳부터 찾아가라.”

그가 시간을 허비하고서야 깨달은 것과 꼭 찾아가라는 ‘이곳’. 억대 연봉 법무사가 될 필승 전략, 아래 링크에서 볼 수 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11879 (새 창)

“치킨집·경비원 할 겁니까” 부고 문자 후 깨달은 퇴직의 진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10005 (새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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