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안 나와도 연봉 1억 넘는다”…AI 시대 몸값 뛰는 직업의 정체 [이윤정 기자의 소소월드]

오는 19일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수험생들은 대학과 전공 선택에 막바지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하지만 인공지능(AI)이 사무직 업무까지 빠르게 파고드는 시대, 대학 졸업장이 높은 연봉과 안정적인 일자리를 보장할 수 있을까.
AI가 회계와 문서 작성 등 사무직 업무까지 빠르게 수행하면서 대학 졸업장보다 실제 기술과 숙련도가 중요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에서는 배관공과 전기기사 등 숙련 기술직의 인력난이 심해지면서 이들의 몸값도 높아지고 있다. 반도체 공장과 데이터센터 건설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전기 설비를 설치하고 복잡한 배관을 시공할 사람을 구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AI 시대에도 높은 연봉을 받으며 살아남을 수 있는 직업은 무엇일까. 미국 워싱턴포스트, 국제 통신사 로이터통신, 일본 경제 매체 프레지던트 온라인 등 해외 보도를 바탕으로 AI가 대체하기 어려운 직종과 이들 직업의 몸값이 높아지는 이유를 살펴봤다.
학위가 없어도 높은 소득을 올리는 직업은 따로 있었다. 미국 노동통계국(BLS)이 올해 5월 발표한 최신 직종별 임금 통계(지난해 5월 기준)를 보면, 미국 배관공·배관설비공의 연간 중위임금은 6만3800달러, 전기기사는 6만3190달러였다. 냉난방·공조 설비 기술자의 연간 중위임금도 6만1010달러로 집계됐다. 모두 미국 전체 직업의 연간 중위임금인 5만980달러를 웃돈다. 중위임금은 해당 직종 종사자의 임금을 낮은 순서부터 나열했을 때 한가운데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절반은 이보다 많이 벌고 절반은 적게 번다는 뜻이다.
숙련도와 근무 분야에 따라 소득은 더 높아질 수 있다. 배관공·배관설비공의 상위 10%는 연간 10만8420달러 이상을 벌었고, 전기기사도 상위 10%의 임금이 10만8510달러를 넘었다. 냉난방·공조 설비 기술자의 상위 10% 임금 역시 9만5210달러 이상이었다. 달러당 1500원으로 단순 환산하면 각각 약 1억6300만원, 1억6300만원, 1억4300만원에 해당한다. 다만 이는 각 직종에서 임금이 높은 상위 10%의 기준이다.
전력망을 설치하고 수리하는 전력선 설치·수리 기술자도 눈여겨볼 만하다. BLS에 따르면 이 직종의 2025년 연간 중위임금은 9만5320달러로, 배관공과 전기기사보다 높았다. 전력선 설치·수리 기술자는 송전·배전 시스템의 전선과 케이블을 설치하거나 수리한다. 고압 전력 설비를 다루는 만큼 감전과 추락 등 안전 위험이 따르고, 기상 상황에 따라 야외에서 일하거나 긴급 복구에 투입될 수 있다. 높은 임금에는 업무의 위험성과 전문성이 반영돼 있다.
이들 기술직의 수요가 커지는 배경에는 제조업 투자와 전력 인프라 확충이 있다. 반도체 공장과 데이터센터, 발전소와 송전망을 새로 구축하려면 전기 배선과 배관, 냉난방 시스템을 설치하고 관리할 전문 인력이 필요하다. AI를 활용하는 데이터센터가 늘어날수록 이를 가동하는 데 필요한 전력과 냉각 설비 수요도 커진다. 공장이나 데이터센터 건설 계획이 있어도 설비를 설치하고 유지·보수할 사람이 부족하면 공사 일정이 늦어지거나 시설을 제때 가동하기 어려워진다.
게다가 해당 분야는 은퇴자가 늘어나는 반면 신규 인력 유입은 이를 따라가지 못해 인력난이 더욱 심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로이터통신은 데이터센터와 발전소, 송전 프로젝트 확대가 미국의 전기기사와 전력선 기술자 등 건설·엔지니어링 인력 부족이 심화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건설업 종사자의 약 41%가 2031년까지 은퇴할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전기기사 가운데서도 55세 이상 비중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골드만삭스는 전력 부문이 설비 확충을 위해 2030년까지 추가로 50만7000명의 인력을 필요로 할 것으로 추산했다.
AI가 일자리를 줄일 수 있다는 우려와 별개로, AI를 운용하는 시설과 전력망을 실제로 구축하고 유지할 사람에 대한 수요는 오히려 늘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미국건설업협회 수석 이코노미스트 애니르반 바수는 로이터에 “데이터센터 건설 수요가 전기기사 수요를 크게 끌어올리고 있다”며, “많은 프로젝트가 매우 긴급하게 추진되면서 전기기사에게 상당히 높은 임금을 지급하고 있다”고 했다.
제조업 현장에서도 인력 부족은 과제로 꼽힌다. 컨설팅기업 딜로이트와 미국 제조업협회 산하 제조업연구소는 미국 제조업에서 2025년 8월 기준 약 40만9000개의 일자리가 채워지지 않은 것으로 추산했다. 두 기관은 미국 제조업이 2033년까지 약 380만명의 신규 인력을 필요로 할 수 있으며, 인력난이 해소되지 않으면 이 가운데 약 190만개의 일자리가 채워지지 않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런 직업은 대학 학위 대신 직업교육과 도제교육, 현장 경험을 통해 전문성을 쌓을 수 있다는 점에서도 관심을 받는다. BLS에 따르면 배관공과 전기기사는 일반적으로 고등학교 졸업 수준의 학력을 바탕으로 진입할 수 있으며, 도제교육을 통해 기술을 익히는 경우가 많다. 반면 냉난방·공조 설비 기술자는 직업학교나 전문대학 등에서 비학위 과정을 이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부분의 주에서는 배관공과 전기기사에게 면허를 요구한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다고 곧바로 고소득을 올릴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숙련도를 쌓는 데 시간과 훈련이 필요하다.
일본에서도 산업 현장에 필요한 기술 인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일본 전국공업고등학교장협회 조사에 따르면 2024년도 공업고등학교 졸업자에 대한 구인배율은 31.9배였다. 기업들이 채용하려는 인원 1명당 일자리가 31.9개였다는 의미다. 취업을 원하는 졸업자보다 이들을 채용하려는 기업의 일자리가 훨씬 많은 것이었다.
그렇다고 대학 학위가 고소득의 걸림돌이 됐다는 뜻은 아니다. 학력별 임금 통계를 보면 대학 졸업자의 소득이 여전히 높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한눈에 보는 교육 2025’에 따르면 고등교육을 받은 성인은 중등교육까지만 받은 성인보다 평균적으로 54% 높은 소득을 올렸다. 국가별 차이는 있지만 고등교육이 장기적인 소득과 고용 안정성에 도움이 된다는 점은 여전히 유효하다.
다만 대학에 진학하지 않더라도 전문 기술을 익혀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는 길이 존재하고, 산업 현장의 인력난이 그 가치를 끌어올리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 에너지인력개발센터의 미시 헨릭슨 사무총장은 “에너지 산업의 인력 확충을 위해 고졸 학력자부터 박사학위 소지자까지 다양한 수준의 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