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사랑하는 법’ 배우면··· 암 걸린 힘든 상황에서도 심리적 개선 효과

암에 걸리면 신체적 고통뿐 아니라 삶의 의미를 잃고 사기가 저하되는 상태 또한 경험하기 쉽다. 이런 환자들에게 스스로를 따뜻하게 다독이게 돕는 심리 프로그램을 시행해보니 68%가 뚜렷한 개선을 보였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박혜윤 교수·최연규 임상강사 연구팀은 자신을 따뜻하게 대하는 태도인 ‘자기자비’를 기르는 ‘컴위드유(Compassion With You)’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운영 가능성과 예비 효과를 확인했다고 2일 밝혔다. 이 연구는 국제학술지 ‘정신종양학(Psycho-Oncology)’에 게재됐다.
암 환자는 치료 과정에서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나’ ‘이렇게까지 해서 살아야 하나’ 같은 생각 때문에 삶의 의미와 버틸 힘을 잃는 사기 저하를 겪기 쉽다. 이는 기분과 흥미가 가라앉는 우울증과 구별되며, 우울증이 없어도 사기 저하가 심한 환자가 있다. 연구진은 주로 불안과 우울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춘 기존 심리치료 대신 암 환자 44명을 대상으로 정신건강전문가와 1대 1로 60분씩 총 5회 대면이나 화상으로 만나는 심리 프로그램을 진행해 사기 저하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지 확인했다.
분석 결과, 프로그램 참여자들의 사기 저하, 영적 안녕, 불안, 우울, 자기자비 점수는 모두 통계적으로 의미 있게 개선됐다. 변화는 대부분 프로그램 직후부터 나타나 지속됐고, 프로그램 시작 1개월 후 시점을 기준으로 했을 때 특히 사기 저하 항목에서 개선 폭이 가장 크게 나타났다.
사기 저하 설문 점수는 시작 전 평균 17.3점에서 프로그램 직후 12.6점, 1개월 뒤 11.3점으로 낮아졌다. 시작 당시 사기 저하가 다소 심각한 수준(10점 이상)이었던 환자 중 1개월 뒤 평가까지 마친 25명을 분석해보니 68%(17명)는 측정 오차를 넘어서는 개선을 보였고, 56%(14명)는 점수가 10점 미만으로 낮아졌다. 사기 저하가 뚜렷하게 악화한 환자는 없었다.
환자들의 심리가 개선되는 양상은 다른 항목에서도 확인됐다. 영적 안녕 점수는 시작 전 평균 21.2점에서 프로그램 직후 28.8점으로 올라 1개월 뒤에도 비슷하게 유지됐다. 자기자비 점수 역시 시작 전 평균 76.8점에서 프로그램 직후 85.4점, 1개월 뒤 87.3점으로 높아졌다. 반면 불확실한 상황을 견디기 어려워하는 정도는 뚜렷한 변화가 없었다. 프로그램이 도움이 됐다는 평가는 5점 만점에 평균 4.63점이었고, 연구 기간 이상 반응은 보고되지 않았다.
최 임상강사는 “암 환자들이 진료실에서 어렵게 꺼내는 고민은 우울보다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에 관한 것이었고, 이 부분은 정신건강전문가들도 다루기 어려운 주제”라며 “자기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는 과정에서 우울과 불안을 넘어 삶의 의미와 버틸 힘에도 변화가 나타났다는 점에 컴위드유 개발의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컴위드유는 자신의 감정을 말로 표현하기 어려워하고 질병에 걸린 자신을 탓하는 경우가 많은 한국 암 환자의 특성을 고려해 치료자와의 관계 속에서 단계적으로 자비를 배울 수 있도록 설계했다”며 “현재 다기관 무작위 대조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고, 효과가 입증되면 많은 암 환자가 활용할 수 있도록 치료자 교육도 체계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