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멩이의 시간이 밝혀낸 지구의 비밀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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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멩이의 시간 감각
마샤 비외르너루드 지음
김소영 옮김
코쿤북스
지구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버텨온 존재가 있다. 길가에 흔히 걷어차이는 돌멩이다. 인간의 한평생은 길어야 100년에 불과하지만, 돌멩이 하나가 형성되고 침식을 거쳐 마모되기까지는 수백만 년에서 수억 년의 세월이 소모된다. 그리고 그 안에는 멸종된 생명체들의 고요한 기억과 숨겨진 지구의 비밀이 켜켜이 새겨져 있다. “모든 장소에서 암석은 긴 시간에 걸쳐 펼쳐진 사건들을 증언한다.” 저자가 돌멩이의 시간에 주목한 이유다.
지질학자인 저자는 억겁의 세월을 견뎌온 돌멩이의 시선을 통해 인류의 시간 개념을 뒤흔든다. 현재의 지구를 만든 건 가늠할 수조차 없는 세월에 걸쳐 녹고, 굳고, 끓어오르고, 얼어붙었던 돌멩이들이다. 이들은 지구의 탄생부터 산맥과 대기의 형성, 생명의 출현과 대멸종을 목격한 유일한 존재이기도 하다.
과학자들은 돌멩이가 간직한 시간의 기억을 연구함으로써 지구의 탄생과 변화를 추적해왔다. 45억5000만 년이라는 지구의 나이를 알려준 것도 돌. 1956년 한 젊은 지질학자가 운석을 통해 지구의 나이를 구했다. 하나의 산이 성장하고 파괴되는 시간을 측정한 것도 돌을 들여다보는 지질학자의 몫이다. 저자는 돌을 통해 지질학의 위상을 재정립한다. 지질학은 인간이 경험하는 한계를 초월해 시간을 목격할 수 있는 렌즈이기 때문이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인간이 인지하는 시간과 돌멩이가 견뎌내는 시간 사이의 거대한 격차를 실감하게 된다. 저자는 “우리 인간은 암석으로 이루어진 고산지대 풍경 속에서 영원을 엿보았다고 생각하지만, 웅장한 봉우리와 장엄한 절벽들은 그저 ‘지금 이 순간’ 남아 있는 잔재에 불과하다”고 일깨운다.

문제는 돌멩이에 비해 잠깐 살다 가는 인간이 지구 표면에 빠르고 깊은 흉터를 남기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바로 ‘인류세(Anthropocene)’의 등장이다. 지질학적 시간 척도에서 보면 눈 깜빡할 사이에 불과한 지난 몇 세기 동안, 인류는 대기의 성분을 바꾸고 지층에 플라스틱을 새겨 넣었다. 저자는 지질학적 변화 속도를 압도하는 인간의 폭주가 결국 스스로를 파멸로 몰아넣고 있다고 경고한다. 특히,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증가는 기후변화를 가속하면서 인류를 위기에 몰아넣는다. 저자는 “인류세의 거대한 역설은, 우리가 지구에 미친 막대한 영향력 때문에 오히려 자연이 다시 절대적인 통제권을 쥐게 됐다는 점”이라며 자연이 몰고 올 반격 앞에 인류가 얼마나 무력한지 짚어낸다.
책은 인류가 미래 세대와 지구 전체를 조망하는 ‘시간 감각(Timefulness)’을 회복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근시안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이런 지질학적 눈을 가질 때 비로소 기후위기와 환경 문제에 대해 근본적인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산처럼 생각하기’라고 표현한다. 발밑의 돌멩이가 들려주는 억겁의 소리에 귀를 열어야 파멸을 멈추고 다음 세대로 이어질 긴 호흡의 미래를 그려낼 수 있다. 결국 이 책은 단순한 지질학 교양서를 넘어, 찰나를 살아가면서도 영원할 것처럼 행세하는 인류를 향한 묵직한 경고다.